본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의미해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보면서 한국 영화인 <아가씨>가 떠오를 거에요. 아름다운 섬에 수감되어서 원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인 “엘로이즈(아델 하에넬)”는 “히데코(김민희)”를,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사랑과 죄책감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숙희(김태리)”를 쏙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엘로이즈와 같은 운명 속에서 절벽에 몸 던지기를 택하였던 언니의 존재 역시 히데코에게 죽음의 선택지를 보여주었던 “이모(문소리)”와 맞닿아있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그러나 <아가씨>와는 달리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속 주인공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탈출하는 대신에, 손을 놓고 각자의 운명을 짊어지기를 택합니다. 아내는 저승에 남고, 자신은 시인으로 살아갔었던 오르페우스 신화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감독이 이런 결말을 택했던 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여성 간의 사랑 뿐만이 아니라 여성들의 삶과 비애들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엔 두 여주인공 뿐만 아니라 하녀 “소피(크리스텔 바리스)”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집의 주인(발레리아 골리노)이 섬에 있을 땐 “엘로이즈” 와 마리안느, 소피는 철저히 계급과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다에 빠진 캔버스를 스스로 건져내고, 짐을 맨 채로 거친 산길을 홀로 올라가며, 벽난로 앞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담배를 태우는 첫 장면을 보여주듯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부러움과 거리감을 표현했고, 마리안느 역시도 엘로이즈 몰래 그녀를 시집보낼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으며, 소피는 하녀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그런데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나서 세 여성들의 관계는 평등과 자유를 이룹니다. 이때 세 여성들로 하여금 서로에게 부여된 계급과 운명을 초월해 하나의 것으로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비애들과 경험입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소피는 생리통을 앓는 마리안느를 간호해주고,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소피의 낙태를 도와주며, 엘로이즈는 남성 화가에 비해 제약이 많은 마리안느를 위해 소피의 낙태 장면을 재현해 여성의 삶을 기록하게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이 세 명의 여성들은 똑같은 높이의 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둥근 탁자에 앉아서 동등한 게임을 펼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진정한 사랑과 우정은 동등한 관계일 때 성립할 수 있음을, 엘로이즈의 말마따나 “평등한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을 시각화한 장면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밤중에 여성들이 불가에 모여서 합창하는 장면은 흑인들의 노동요처럼 여성의 비애와 연대가 최 정점에 다다르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지상천국은 주인이 왔음을 알리는 남자 하인의 침입으로 인하여 끝이 나버립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소피는 당시 여성들에게 주어진 세 종류의 삶을 보여주는 인물들입니다. 프레임에 갇혀 남자들에게 사고 팔리는 처지인 엘로이즈는 책부터 담배, 음악, 미술, 사랑과 섹스 등의 수 많은 경험을 제약 당했던 중상층 여성들을 대표하는데, 이로 인한 분노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표현되듯 수많은 여성 창작가들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일하는 와중에도 임신과 출산 낙태들을 처리해야 하는 소피는 최하위층 여성들의 비애를 보여주는데, <리지>에서처럼 소피 같은 위치의 여성들은 집 안의 남자 주인들로부터 성폭행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결혼에 대한 압박 없이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며 창작 할 수 있는 마리안느 같은 여성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녀조차도 남자 화가들과 달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주제가 한정되어있었으며, 그림조차도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 발표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결국 그 어디에도 여성들을 위한 곳은 없었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그래서 초상화 그리기와 웃음을 짓는걸 거부하던 엘로이즈는 아마도 언니처럼 결혼 대신 자살을 선택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안느와 나누었던 예술과 사랑은 그녀의 분노를 사그라들게 하며, 질식할 것 같았던 삶을 버티게 하는 숨통이 되어줍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그렇게 엘로이즈는 버티기 힘든 순간순간들마다 마리안느와 읽었던 책들, 음악, 그림, 사랑을 떠올리며 자신의 운명을 견뎌내었으리. 그래서 엘로이즈는 말한다. "후회하지 말고 기억하라"며, 결국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수세기 동안의 억압과 차별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과, 이를 버틸 수 있게 했던 사랑과 예술의 힘을 기록하는데 성공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하나의 화폭을 연상시키는 촬영과 절제되면서도 우아한 연출들이 매우 매력적인 작품으로, <하늘이 기다려><다이빙>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노에미 메를랑”이 마침내 자신의 가능성을 표출하고, <언노운 걸><120BPM>의 “아델 하에넬”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해석 줄거리

단편 영화 <폴린>부터 장편영화 <워터 릴리즈>, 그리고 이 영화까지 포함하여 “셀린 시아마” 감독과 세번째 협업작품인 아델 하에넬은 실제로 셀린 시아마와 전 연인 관계이기도 합니다. 작품 처음부터 엘로이즈 역은 그녀를 염두하고 쓰여 졌다고 하는데, 그 점에서 엘로이즈를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심경들은 감독 자신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그린 프랑스 화가, 헬렌 델마이어(Hélène Delmaire)

 

공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