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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이해, 한글의 특성

문자는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그림 문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림 문자를 추상화하고 모양을 간략하게 한 것이 한자와 같은 표의 문자이다. 표의 문자는 하나의 개념을 하나의 글자로 표시해야 했기 때문에 점점 수가 늘어나 기억하기가 불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표의 문자보다 글자 수가 훨씬 적으며, 글자를 의미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발음 표시 기호로 사용하는 표음 문자가 만들어졌다. 이 표음 문자는 음절 전체를 하나의 글자로 나타낸 음절 문자와, 더 나아가 자음과 모음 각각을 글자로 나타낸 음운 문자로 다시 나뉜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자 중에서 음절 문자에는 일본의 가나가, 음운 문자에는 영어 알파벳이 있다.

 

 

한글은 문자 발달사의 마지막 단계인 음운 문자에 속한다. 그런데 한글은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든 점, 가획을 통해 소리를 자형(字形)과 관련시키고 있는 점 등 매우 독특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들 중 특별히 자형이 음운 자질을 반영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음운 문자와는 별도로 ‘자질 문자’를 설정하고 한글을 여기에 귀속시키기도 한다. 즉, 발음 위치가 같은 쌍인 ‘ㄱ, ㅋ’과 ‘ㄷ, ㅌ’에서 추가된 획은 ‘거셈’이라는 자질을 나타내므로 한글을 자질 문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질 문자’란 명칭은 자질 자체를 글자로 만든 것에 붙여야 한다. 다시 말해, ‘거셈’이라는 자질이 자형에 반영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이 자질이 하나의 독립된 글자로 나타나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글을 완전한 의미의 자질 문자로 보기는 어렵다.

 

 

문자 발달사의 단계가 반드시 문자의 우수성의 정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한글이 자질 문자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사실 각 문자 부류는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표의 문자는 음성을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쉽다는 장점을, 음절 문자는 실제 말소리의 단위인 음절을 반영하고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음운 문자는 적은 수의 글자로 문자 생활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이며, 더욱이 한글처럼 자질 문자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으면 자형끼리의 유사성에 의해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장점까지 추가로 가지게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한글이 몇 가지 문자 부류의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문자가 서로 다른 문자 부류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예는 흔히 발견된다. 한자는 표의 문자이지만, ‘印度, 伊太利[나라 이름]’처럼 외국어 고유 명사를 표기할 때에는 주로 글자의 음을 이용하므로 문자 운용의 관점에서 보면 음절 문자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한글은 음운 문자이면서 자질 문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자음과 모음을 한 글자로 모아 씀으로써 문자 운용의 관점에서 보면 음절 문자의 특성까지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한글은 문자 발달사의 각 단계 문자 부류들이 보여 주는 장점들을 다른 문자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음운 문자이므로 효율적이고, 자질 문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배우기가 쉬울 뿐 아니라, 모아쓰기를 함으로써 음절 문자의 장점도 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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